
광주치매요양병원, "엄마, 잘 잤어?" — 호칭 하나가 만드는 소통과 안전의 차이
호칭은 관계를 설정하는 첫 단추입니다
안녕하세요, 광주 에스웰 요양병원 환자안전실장입니다.
저는 간호사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이 하나 있는데, 환자를 "어르신"이라 부르는 대신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엄마, 잘 주무셨어?"
"아빠, 오늘 기분 어때?"
환자분이 처음 들으면 어색해 하시기도 합니다만, '엄마', '아빠' 소리를 들으시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어르신들이 많으세요.
병원에서 그런 호칭으로 불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제가 어르신을 환자라고 부르면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가 되는 거고,
제가 어르신을 엄마·아빠라 부르면 부모 자식의 관계가 되는 거지요.
물론 실제 부모자식 관계는 아니지만, 부모님의 눈으로 봐 주신다는 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잘 해 드려도 요양병원은 집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팩트입니다.
의료진과 환자는 치료하는 사람, 치료받는 사람의 관계구요.
이 심리적 거리감이 환자를 외롭게 만듭니다.
사람은 외로우면 자기방어 본능이 강해지지요.
병원에서 난폭해지는 경우도 '정 붙일 곳이 없어서', '내 편이 없으니 나라도 나를 지켜야 된다'는 방어 본능이 자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 '아빠'라는 호칭은 이런 면에서도 환자가 요양병원에 마음을 붙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느 정도 윤활유 역할을 해 준달까요^^
치매 환자와 시공간 맞추기
치매나 인지 저하가 있는 환자들은 종종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시지요.
그분들의 시공간에 맞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소통의 핵심입니다.
302호 할머니는 자주 "애들 학교 안 갔어?"라고 물으십니다.
할머니의 머릿속에서는 지금이 자녀들이 어렸던 시절이신 거지요.
그럴 때면 저는 "엄마, 애들 잘 갔어요.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안심하며 미소를 지으세요.
"아유, 정신 차려요, 지금 병원인데 무슨 애들 학교를 가요"라고 현실을 교정하려 들면 환자는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환자가 있는 시간대로 한 발 들어가 드리면 대화가 통하고 환자는 평안을 찾습니다.
물리적 안전은 심리적 안전에서 시작됩니다
환자가 의료진을 신뢰하지 않으면, 환자가 불편함을 숨기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거나 의료진을 피하려 들면,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310호 할아버지는 입원 초기 벨을 거의 누르지 않으셨습니다.
"괜찮아, 혼자 할 수 있어"라고 하시며 혼자 일어나려다 휘청거리신 적이 있습니다.
아찔했지요.
그 연세에 넘어지시면 바로 골절에 와상입니다.
워낙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셔서 차근차근 말씀드렸었습니다.
"아빠, 저희한테 부탁하는 게 폐 끼치는 게 아니에요.
아빠 안 다치도록 돕는 게 저희 일이에요.
혹시라도 아빠 다치시면 우리 마음이 너무 아플거에요."
그렇게 말씀드린 후로는 필요할 때마다 벨을 눌러주십니다^^
-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벨을 누릅니다 → 혼자 일어나다 낙상하는 사고를 막습니다
-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합니다 → 방치되던 증상이 조기에 발견됩니다
-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합니다 → 간병인과 환자 사이 협력이 생깁니다
물리적 안전은 심리적 안전에 기반합니다.
오늘도 또 열심히 엄마, 아빠들을 만나러 갑니다.
에스웰 요양병원 환자안전실장